[앵커]
프랑스 파리에서 한 한인 입양인 출신 예술가가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특별한 전시회를 마련했습니다.
지난해 역시 [글로벌코리안]을 통해 소개해드렸던 로르 바뒤플 작가가 그 주인공인데요.
전 세계 한인들의 다양한 삶을 소개하는 [글로벌코리안], 이번 시간에는
파리에서 예술을 통해 한인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있는 로르 바뒤플 작가를 만나봅니다.
다양한 예술 공간이 자리한 프랑스 파리의 마레 지구.
프랑스 예술 문화의 중심지인 이곳에서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색색의 수채화로 그려진 고무신 25개가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우리 입양인들은 한국에서 서구권 국가로, 각자의 고무신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작품 속에 그린 25 켤레의 신발은, 전 세계에 약 25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인 입양인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한국을 떠나 해외로 건너간 한인 입양인의 삶과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
관람객들은 금세 그림 속에 푹 빠져듭니다.
[블랑슈 발레리 / 프랑스 : 아름다운 전시회라고 생각합니다. 느낀 것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하는 일은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
[에블린 파르카스 / 프랑스 : 작가는 (오늘 전시회를 통해) 모국을 떠나야만 했던 입양아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주인공은 바로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된 예술가, 로르 바뒤플 씨입니다.
"제 이름은 로르 바뒤플입니다. 대한민국 진주에서 박아름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프랑스로 입양될 때 로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84년 여름, 진주에서 태어나 생후 7개월 만에 낯선 땅 프랑스로 입양된 로르 바뒤플 작가는, 한국인으로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하며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단절된 고국과 잃어버린 가족… 아픈 과거에서 비롯된 그리움과 상실의 감정은 한국 지도와 고무신 같은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 캔버스 위에 담겼습니다.
"이것은 한국인 아버지(친부)가 태어나신 곳의 좌표입니다. 여기는 제가 태어난 진주의 병원 좌표입니다. 여기는 제가 태어나고 1년쯤이 지났을 때 친아버지 가족이 저를 맡긴 고아원의 좌표입니다."
"(프랑스로 입양될 때 신고 있던) 이 고무신을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몇 주 전에 부모님 댁에서 다시 찾았습니다. 저는 제 신발을 그림으로 그렸고 그 아래 제 한국 이름인 박아름과 생년월일, 입양날짜를 함께 적었습니다. 이 작업을 시작으로 다른 입양인들의 신발들을 재현한 큰 회화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상처를 마주 보아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지만 나의 뿌리, 한국을 부정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긴 아픔의 시간을 뒤로하고 한국 국적 회복까지 신청한 로르 바뒤플 작가.
한국 이름이 적힌 한국 여권을 손에 쥔 순간, 작품에도 한인이라는 정체성을 깊이 새겨 넣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국 입양인 출신들은 본인이 한국인이라고 느끼지 못합니다. 한국인이라고 말할 자격도 갖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한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한국 국적을 되찾고 취득한 이후 유럽에 있는 한국인 디아스포라로서 한국인의 정서를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의 삶은 경험하지 못한 입양인들에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끝없는 질문의 대상입니다.
이를 끊임없이 고찰하는 작가의 작업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넘어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한인 입양인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호난존 / 한인 입양인 출신, 사진작가 : 작업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사실 제 이야기의 일부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국인 입양인 출신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혼혈입니다. 이것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입양인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반영합니다. 입양인의 이야기가 (작품을 통해) 한국 역사 속에 기록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감동적입니다.]
[리디 솔로몽 / 한국계 프랑스인, 피아니스트 : 어릴 때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인이라는 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어요. 로르 작가는 아마 저처럼, 우리 모두처럼 힘든 경험을 겪었겠죠. 근데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게 진짜 큰 복이에요.]
성공리에 전시회를 마친 작가는 이제 또 다른 여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해외 입양인 예술가들과 함께, 잃어버린 뿌리를 예술을 통해 찾아가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요.
"해외 한인 예술 프로젝트 OKAP(Overseas Korean Art Project)이라는 예술 단체를 결성했습니다. 예술 프로젝트의 제목은 '여정'입니다. 모든 작가들이 각자가 태어난 한국의 고향에서 동시에 떠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있는 작업실과 전시장으로 이동하면서 그 과정을 기록합니다. 장기적인 프로젝트이지만 저희에게는 매우 큰 동기 부여가 되는 작업입니다."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한인 디아스포라로 살아온 삶의 궤적을 표현하고 세상과 더욱 깊이 있는 공감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의 작품을 통해) 입양인 출신의 예술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내적 친밀감을 가지며,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끌어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싶습니다."
로르 바뒤플 작가의 예술적 여정은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한인 입양인들과 위로와 공감을 나누고 있는 작가의 도전이 앞으로도 순항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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